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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風秋霜

TWINSEEDS 2010. 5. 25. 00:06




7. 노무현의 실패는 노무현의 것이다.

 4월 30일 아침 여덟 시, 봉하마을을 떠나 버스를 타고 서울 대검찰청에 갔다. 참여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총리와 장관들, 청와대 참모들이 와서 배웅해 주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버스를 향해 노란 국화를 던졌다. 봉하에서 검찰청사까지 5시간 20분 내내 취재 차량과 방송 헬기가 따라왔다. 문재인, 전해철 두 변호사가 조사에 입회했다. 건호가 관련되었다는 500만 달러, 아내가 받아 쓴 3억 원과 100만 달러, 그리고 정상문 비서관이 횡령했다는 12억 5,000만 원. 문제는 이 세 가지였다. 500만 달러는 순수한 투자 거래이며 퇴임한 후에 알고 건호가 손을 떼도록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3억 원과 100만 달러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경위와 사용처를 진술했다.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 원은 내가 알지 못한 일이었다. 모두 진실 그대로 이야기했다.

 검사들이 대질을 한다면서 박연차 회장을 조사실로 데리고 왔다. 그를 원망하는 마음도 없었고 비난할 수도 없었다. 100만 달러 사용처에 대해서는 추후에 내역을 제출하기로 했다. 조사가 끝나고 며칠 안에 다 작성해서 제출했다. 새벽 두 시에 대검찰청을 나왔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노란풍선을 들고 서 있었다. 밤새 차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내 생애 마지막 외출이었다. 검찰이 신속하게 기소할 것으로 보고 틈틈이 진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언론보도는 계속되었다. 아내를 다시 소환한다는 말이 돌았다.

 아무도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노무현은 600만 달러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돼 있었다.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 회갑 선물로 박연차 회장이 주었다는, 내 회갑때는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소위 '명품 시계'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나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검찰 소환조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언제 끝날지, 앞으로 무슨 일이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검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라고 조롱했다. 노무현의 인생만이 아니라 부림사건 변론을 맡았던 이래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모욕하고 저주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대통령직 5년을 포함한 정치 20년, 그 모든 것에 침을 뱉었다.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분들을 향해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는 아니라고. 노무현은 이미 정의니 진보니 하는 아름다운 이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노무현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으니 노무현을 버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 노무현 때문에 도매금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분노. 노무현이 진보의 미래를 망쳤다는 원망을 쏟아 냈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보가 산다고 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했다. 내가 그분들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한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잘못, 나의 실패, 나의 좌절까지도 이해하며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더 그런 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인정한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시민의 권리, 피의자의 권리라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내게 중요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알고 범죄를 저지른 것과 주변 관리를 잘못해서 사고가 난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차이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무현을 믿고 사랑하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복잡하게 하지 말고 다 내가 한 것이라고 나서지 못한 것도, 바로 그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야망이 있어서 스스로 준비하고 단련했지만, 그들은 나로 인해 아무 준비 없이 권력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고초를 겪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